History/시행별

1996.11.13(수) : 199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인도르 2023. 2. 7. 08:41
반응형

대상 : 고등학교 3학년

실시일자 : 1996.11.13(수)

출제 : 교육과정평가원

과목을 클릭하면 해당 과목의 포스트로 이동합니다.

영역 과목 문항수 시험시간 배점 비고
5지선다형 주관식
언어 국어 65 0 65 100분 120점 듣기6문항
수리ㆍ탐구(Ⅰ) 인문,
예체능계
수학 24 6 30 100분 80점  
자연계 수학 24 6 30  
수리ㆍ탐구(Ⅱ) 예체능계 과학 32 0 32 120분 48점  
사회 48 0 48 72점  
소계 80 0 80 120점  
인문계 과학 32 0 32 48점  
사회 48 0 48 72점  
소계 80 0 80 120점  
자연계 과학 48 0 48 72점  
사회 32 0 32 48점  
소계 80 0 80 120점  
외국어 영어 55 0 55 80분 80점 듣기
17문항
총계 224 6 230 400분 400점  

처음으로 400점 만점 제도를 도입한 수능으로 수능 역사상 가장 수준이 높았다.

역대 최고 난이도의 수능 시험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단지 문제 수준만 높았던 것이 아니다. 95 ~ 98학년도 수능은 역대 수능 사상 시험 범위가 가장 넓었다. 즉 수험생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 숫자가 자그마치 12~14과목으로 가장 많았던 수능이었다. 게다가 모두 필수 과목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중국 가오카오가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특정 과목 쏠림 지수가 0이다. 참고로 99학년도 수능부터 선택 과목 제도가 도입되면서 과목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수능 초기부터 있었던 탐구영역에서의 과목간 통합형 문제가 97학년도 수능에서 특히 많았다. 그리하여 예컨대 <물리와 생물이 결합된 문제>, <물리, 화학, 지구과학이 결합된 문제>, <국사, 세계사, 세계지리가 결합된 문제> 등이 마구마구 출제되었다. 요즘처럼 자신이 선택한 과목만 치르는 시스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언어 영역에서는 대중문화와 사회의 문제점을 결합시킨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고, 외국어 영역 듣기평가가 17문제로 늘어났다.

여러 가지 수치가 그 비범함을 말해주는 수능이었다.

400점 만점에 373.3점을 득점한 학생이 자연계 전국 수석을 차지했으며,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부로 진학했다.

자연계 차석(전국 차석)은 371.7점이었다. 인문계 수석은 370.2점, 여자 수석은 368.7점(재수생, 자연계 전국 5위), 예체능계 수석은 334.3점이었다.

총점 기준으로 전국 4%가 원점수 400점 만점에 인문계 279점, 자연계 286점이었다.

1%선은 인문계 308점, 자연계 313점에서 형성되었다.

당시 입학 평균 성적이 가장 높았던 서울대 법학부의 입학 평균 성적은 330점 근방에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320점만 받아도 서울대의 웬만한 학과에 합격할 수 있는 점수였다.

한편 300점만 받아도 서울대 중하위권 학과를 갈 수 있었다. 280점이면 연고대 하위권, 240점만으로도 육군사관학교를 갔고, 반타작인 200점으로도 인서울 중위권 대학교를 거뜬히 갈 수 있었다.

과목별로 언어 영역의 경우에는 120점 만점에 97점 정도(100점 만점에 81점)가 상위 4%정도였으며(당시에는 등급의 개념이 없었다) 110점 이상(100점 만점으로 91.67점)이 전국에 487명(전 수험생의 0.06%, 자연계 217명, 인문계 269명, 예체능계 1명)밖에 없을 정도로 매우 어려웠다. 만점은 존재하지 않았고 116~118점인 수험생이 인문계 7명, 자연계 3명이었다.

특히 수리 · 탐구영역(I)에서는 계열 통합으로 평균 80점 만점에 22.92점(전체 평균 100점 만점에 28.65점)이라는 극악의 수준을 자랑하였다.

만약 80점 만점을 받았을 경우 표준점수식으로 계산하면 자연계 187점, 인문계 205점. 자연계에서 60점(100점 만점에 75점)이면 1% 수준이었다. 72점 이상(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은 자연계에서 205명(0.06%), 인문계에서 66명(0.02%)이었으며 예체능계에서 1명이었다. 78점 이상이 자연계 10명, 인문계 1명. 97학년도 수능의 수준에 초점을 맞춘 98수능 대비 모의고사 수리영역 문제들은 괴이한 발상을 요구하는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해서 아직도 수리영역의 레전드로 남아 있다.

수리 · 탐구 영역(Ⅱ)도 매우 심각하여 120점 만점에 100점 이상(100점 만점에 83.33점)을 받은 수험생이 인문계 294명(0.07%), 자연계 468명(0.13%)이며 110점 이상은 인문계 5명, 자연계 13명밖에 없다. 인문계는 80점(1/3을 틀린 경우)을 받아도 상위 3.7%정도였고 자연계도 82점에 3.7%정도였다. 역시 만점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1997학년도 수능시험이 유별나게 어려웠던 것은 논술을 제외한 대학별 본고사가 완전히 폐지된 첫 해이기 때문에 수능이 본고사를 대체할 성격을 띄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공부를 아무리 하더라도 수능은 풀 수 없다"며 공부를 포기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그 때문인지 98학년도 수능은 97학년도 수능에 비해 매우 쉽게 출제되었다. 직전 수능인 97학년도 수능이 너무 어려웠다는 반성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 수능부터 수리탐구 영역(I)에서 주관식 단답형 문제가 최초로 출제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만 지금의 주관식 문항과는 조금 달랐는데, 당시에는 25~30번까지가 주관식 문제였고, 25~29번은 한 자리 혹은 두 자리의 정수가 답이며, 음수가 허용되어 음수이면 음수 부호 칸(Θ)에 따로 마킹을 해야 했다. 또한 30번 문제는 소수 둘째 자리까지 표시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29번 문제는 인문계 1.25%, 자연계 1.09%의 정답률의 극악의 수준을 자랑했다. 비공식적으로는 정답률이 0.08%라고 알려져 있으니 말 다했다. 그 어렵다던 2017학년도 수학 가형 30번의 정답률도 EBSi 기준 3%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 당시 문제 수준이 정말로 답이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출 문제집을 풀다가 소수점까지 표시하란 문제가 튀어나오면 이 시절 나온 문항이란 이야기다. 이러한 주관식 답안 표시는 2005년 수능 이후 전 문항 '세 자리의 자연수'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